제목[칼럼] '녹색백조'를 막는 방법2022-08-31 12:28
작성자 Level 10

'녹색백조'를 막는 방법

 

전자신문 게재: https://www.etnews.com/20220817000118

 

19671월 네덜란드 출신 탐험가는 호주 서부 스완강에서 흑조(黑鳥)를 발견한다. 평생 백조(白鳥)만 본 사람에게 흑조의 존재는 큰 충격이었다. 금융 전문가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그의 저서 '블랙스완'에서 이 이야기를 언급한다.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전 세계 경제가 큰 위기에 봉착하는 현상에 이 용어를 사용한다. 2007년과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으로 초래된 금융위기는 블랙스완의 대표 사건이다.

 

20201월 국제결제은행(BIS)은 이 블랙스완을 차용해서 '그린스완'(Green Swan)이라는 용어를 회자시킨다. '그린스완:기후변화 시대의 중앙은행과 금융 안정성'이라는 보고서를 통해서다. 기후변화가 심각한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말이다.

 

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장들은 이 그린스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 이러한 위험을 2015년부터 경고해 왔고, 이를 막을 방안을 금융안정위원회(FSB)에 고안하도록 했다.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TCFD)는 바로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국제적인 정보공개 이니셔티브다. 201712월 전 세계 금융감독 당국 협의체로 설립된 녹색금융네트워크(NGFS)TCFD처럼 그린스완 방지 차원의 기구라 할 수 있다.

 

TCFD 지지 기관 수는 현재 95개국에 걸쳐 3400개 이상(금융기관 1506)이다. 급속한 증가세다. 한국118(금융기관 56)에 이른다. 일본, 영국, 미국, 호주, 프랑스, 캐나다 다음으로 많다. TCFD 연계공시도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TCFD의 핵심은 정확하고 일관되고 적시성 있는 기후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함으로써 금융시장이 효율적으로 자본을 배분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 있다. 자본 할당을 위해서는 자산 가격과 가치를 제대로 책정하고 평가해야 하며, 이는 올바른 정보에 기반을 둬야 한다. TCFD는 기업 운영방식의 핵심 요소인 거버넌스, 전략, 위험관리, 지표 및 목표라는 4대 영역에 11개 권고 공개항목을 설정하고 기후 관련 정보를 재무 관점에서 공개하도록 요구한다.

 

유럽연합(EU)2024년부터 시행하는 '지속 가능성 보고 지침'(CSRD)TCFD를 포함했고, 영국·스위스·뉴질랜드·싱가포르·홍콩·브라질 등도 TCFD 공시를 의무화했다. 특히 영국은 TCFD의 요구사항을 영국 경제 전반에 걸쳐 2025년까지 의무 적용을 하되 이와 관련한 대부분 조치를 2023년까지 실행한다. 국제회계기준(IFRS)의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는 올해 11월 국제적으로 단일한 '지속 가능성 공시 기준'을 일반 요구 사항인 S1과 기후 관련 공시 요구 사항인 S2로 확정해서 발표할 예정이다. 이 가운데 S2인 기후 관련 공시는 TCFD를 그대로 수용했다. 이런 국제적인 흐름은 TCFD가 기후 관련 공시의 표준이 됐음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이해관계자, 특히 투자자들은 TCFD에 따른 기후 정보공개를 강력히 기업에 요구하고 있다. TCFD 대응은 이제 기후 대응 활동의 기본이 됐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TCFD는 아직 갈 길이 멀다. TCFD 11개 권고 항목의 평균 공시율은 32%에 불과하다. 특히 기후변화에 따른 피해 시나리오 작성과 리스크 관리는 20%로 매우 미흡하다. 지난해 TCFD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그렇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TCFD 대응은 사실 매우 어렵다. 기후 리스크의 계량화, 재무영향 추정, 기후 시나리오 분석 등이 특히 그렇다. 서로의 지식과 경험, 정보 및 지혜를 공유하는 협력과 연대의 실천, 이를 위한 플랫폼이 필요한 이유다. 일본은 2019'TCFD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대응 역량을 높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민간 중심의 '한국 TCFD 얼라이언스'가 출범했다. 올해 하반기부터 가동될 방침이다. 정부는 기후 등 ESG 정보공개 조속한 의무화, 전문인력 양성, 중소기관 지원 등 인프라 구축으로 민간의 얼라이언스 노력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그린스완의 출현은 경제와 금융 시스템을 망가뜨려서 공동체에 재앙을 초래한다. 시간이 촉박하다. 주저 없는 공동 행동만이 희망이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argos6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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