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퍼스 효과’와 ‘국민연금 효과’
캘리포니아주 공무원연금인 캘퍼스(CalPERS)는 주주행동주의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2%의 지분만으로 21년 동안 월트디즈니를 지배해 왔던 마이클 아이너스 회장 겸 최고경영자를 퇴진시켰던 2004년 3월 필라델피아 주주총회는 지금도 유명하다. 오하이오주, 뉴저지주 등 다른 주의 연금펀드도 캘퍼스에 동조했다.
이러한 성과를 가져온 캘퍼스의 정책은 바로 ‘포커스 리스트’(focus list)였다. 당시 월트디즈니는 감사업체의 서비스 위탁과 관련한 부정감사 위험 증가 등으로 이 리스트에 올라있었다.
‘포커스 리스트’는 기업분석과 스크리닝(screening)을 통하여 선정하는데, 한마디로 중점감시 대상기업이라고 보면 된다. 지금은 이사회 질과 다양성(리더십 구조, 독립성, 능력 및 다양성), 공시(ESG 요소에 관련한 실행, 경영전략, 자본도입의 투명성), 주주권리(의결권 및 이사선출), 환경적‧사회적 이슈에 대한 위험관리), 경영진 보상에 대한 주주와의 이해 일치 등이 선정 기준이다. 투자위원회 승인을 통하여 집중감시 대상기업을 확정한 후 경영진과의 비공개 대화, 주주제안 등 적극적인 관여활동(engagement)를 시도하는데, 개선여부를 최대 3년 동안 모니터링 한다.
캘퍼스의 ‘포커스 리스트’는 1987년 ‘타겟 리스트’(target list)라는 명칭으로 시작되었고, 리스트 공개는 1992년부터 이루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캘퍼스가 이 포커스 리스트를 발표할 때마다 리스트에 포함된 기업의 주가가 크게 변동했는데, 특히 캘퍼스의 관여활동을 받은 기업의 장기적인 주가가 벤치마크를 넘어서는 수익률을 보였다. 시장에서는 이를 ‘캘퍼스 효과’(CalPERS effect)라고 불렀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NPS)도 2018년 7월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를 도입하고 ‘수탁자 책임 활동에 관한 지침’을 만들면서 캘퍼스와 유사한 방식을 도입했다. 이른바 ‘중점관리사안’이다. 기업 배당정책 수립, 임원보수 한도 적정성, 법령상 위반 우려로 기업가치 훼손 및 주주권익 침해 사안, 지속적으로 반대의결권을 행사했으나 개선이 없는 사안, 정기 ESG 평가결과가 하락한 사안(이 사안은 올해부터 삭제함),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안이 이에 해당된다. 갤퍼스가 초기에 했던 방식처럼 기업 리스트를 공개하지는 않지만 수행 과정은 유사하다.
이 중점관리사안에 해당되면, 국민연금은 비공개 대화 대상기업 선정 → 비공개 중점관리기업 선정 → 공개 중점관리기업 선정 → 주주제안 등 적극적 주주활동 수순으로 수탁자책임 활동을 진행한다. 2021년 80개 기업에 대하여 210건, 2022년에는 79개 기업에 대하여 183건의 서신발송과 비공개면담을 수행했다.
사실 국민연금의 ‘중점관리사안’은 거버넌스(G) 이슈 중심이었다. 그런데, 지난 3월 7일 이 중점관리사안을 환경(E)와 사회(S)로 확장시키는 ‘수탁자 책임 활동에 관한 지침’이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의결되었다. 환경 영역에서는 ‘기후변화’를, 사회 영역에서는 ‘산업재해’를 지정했다.
국민연금이 2009년에 가입한 책임투자원칙(PRI)에서는 “기후변화는 투자자가 직면한, 최상위 ESG 이슈다(Climate change is the highest priority ESG issue facing investors)”고 그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기후변화를 지정한 건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다.
우리나라의 산재사망률은 OECD 국가에서 최고다. 한 해 10만 명 정도가 산업재해를 당하고, 2000명 정도가 유명을 달리한다. 산재공화국이다. 이를 막기 위하여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도 마련되어 시행 중이다. 산재다발 기업은 법률적 리스크 뿐만 아니라 기업가치를 중대하게 훼손한다. 그런 점에서 산재를 사회 영역의 중점관리사안으로 지정한 건 우리나라의 특수성과 기업가치를 고려한 조치로 이 역시 당연한 결정이다.
사실 기후변화와 산재의 중점관리사안 지정 요구는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이 국민연금이 지난 2021년 연구용역을 낼 때부터 줄곧 주장해 왔던 사안이기도 하다.
국민연금은 내년 본격 적용을 목표로 현재 새롭게 지정된 중점관리사안의 가이드라인을 마련 중에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는 너무 늦다. 거버넌스 영역에서의 중점관리사안 지침이 있고 또 수행 경험도 있기 때문에 그다지 오래 걸릴 일이 아니다.
제도가 있다고 해도 형식적으로 운영한다면 무의미하다. 중요한 건 얼마나 적극적으로 관여활동을 수행해 나가느냐에 있다. 캘퍼스 효과는 그 과정에서 생겼다. 부디 국민연금 효과라는 용어가 시장에서 회자되기를 바란다.
2023년 5월 30일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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