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많은 자발적 탄소시장, 고쳐 쓸 수 있을까(한경ESG)
문제 많은 자발적 탄소시장,
개발국과 개발도상국의 온실가스 감축 해결책으로… 사회적 합의 필요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김태한 수석연구원 기고
탄소배출권. 탄소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 즉 오염시킬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캡 앤 트레이드(Cap and Trade)라고도 불리는 배출권거래제에서 기업이 한 해에 배출할 수 있는 총량(Cap)을 미리 정한 후, 그 만큼의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무상 또는 유상으로 할당할 때 사용한다. 할당된 배출권을 한국에서는 KAU(Korea Allowance Unit), EU에서는 EUA(EU Allowance) 라고 부른다. 배출권거래제에 속한 기업은 연말에 그 해에 실제 배출한 총량만큼의 배출권을 정부에 다시 반납해야 하는데, 애초에 할당 받은 배출권보다 실제 배출량이 많은 기업은 시장에서 배출권을 추가로 구매해야 하며, 할당량보다 실제 배출량이 적은 기업은 남은 배출권을 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다. 규제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러한 탄소시장을 의무시장(Compliance market)이라고 부른다.
흔히 자발적 탄소배출권이라고 부르는 자발적 시장의 배출권은 엄밀한 의미에서 ‘오염할 수 있는 권리’와는 다른 개념이다. 자발적 배출권은 누군가가 온실가스를 감축 또는 제거한 결과에 부여하는 권리다. 쉽게 표현하면, 의무시장의 할당배출권이 나쁜 일을 할 수 있는 증서를 미리 지급하는 개념이라면, 자발적 배출권은 착한 일을 하고 나서 받는 ‘참 잘했어요’ 도장과 같은 개념이다. 그래서 배출권이 아니라 탄소크레딧(Carbon Credit)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다.
때로는 의무시장에서도 자발적 탄소배출권을 전환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하는데, 우리나라 배출권거래제에서도 배출량의 5% 한도내에서 자발적 배출권의 사용을 허용하고 있다. 이때 감축으로 인증 받은 실적은 외부사업인증실적(Korea Offset Credit), 전환된 배출권은 상쇄배출권(KCU, Korea Credit Unit)으로 부른다.
추상적 개념에 기반한 자발적 탄소 크레딧
온실가스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실체가 존재하는 오염물질이다. 매년 세부 자료를 토대로 배출량에 대한 검증을 거치는 의무시장과는 달리, 추상적 개념인 감축량에 기반하는 자발적배출권 시장은 애초부터 불확실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어떤 프로젝트를 통해서 얼마의 배출량을 줄였냐는 감축량은 그 프로젝트가 없었다면 얼마의 배출량이 나왔을 지에 대한 가정에 기반하여 도출된다. 가정(베이스라인)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발급되는 탄소크레딧의 양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추가성이라는 것도 따져봐야 한다. 가만히 있어도 어차피 진행될 일이었다면, 그 프로젝트를 했다고 해서 감축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예를 들어, 법적으로 이미 하도록 되어 있는 일이나, 경제성이 높아 감축동기와 무관하게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에 감축권리까지 인정해 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과거에 이미 발생한 배출량 기록 확인하는 의무시장과 달리, 탄소크레딧은 미래의 감축활동에 대한 결과물을 사전에 승인해주는 형태다. 따라서, 승인받은 계획과는 달리 실제 감축이 이루어지지 않을 위험도 존재한다. 다시 말해, 실제 감축은 일어나지 않고 있는데, 탄소크레딧만 꼬박꼬박 발급되고 있는 것이다. 매년 실사를 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다.
문제 많은 자발적 탄소시장, 정말 필요한가?
최근 자발적으로 넷제로 목표를 선언하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넷제로 이행 수단의 하나로 자발적 탄소시장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자발적 탄소시장의 규모가 2030년까지 약 65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에 대한 관심과 함께, 그 동안 숨겨져 있던 여러 문제들도 우후죽순 튀어나오고 있다. 실제로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자발적 탄소크레딧 상위 50개 프로젝트 가운데 78%가 추가성 또는 감축량 과다 계상 등의 문제가 있다고 보도했으며, 독일 주간지 <디 자이트>는 전세계 최대 자발적 크레딧 등록기관 <Verra>에서 발급한 크레딧의 90%이상이 실제 배출량 저감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렇게 문제 많고 불확실성이 높은 일을 왜 하는 것일까? 앞으로 계속해야 할까?
결국 문제는 돈이다. 감축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든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돈을 지불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돈이 많은 나라, 기업, 개인과 그렇지 않은 나라, 기업 그리고 개인이 존재한다. 그런데 돈이 많은 나라와 기업만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이 아니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1.5℃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개도국과 개발도상국의 배출량 감축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개도국과 개발도상국가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사회의 자금 지원 약속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며, 그 약속마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1.5℃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민간 자금의 유입이 반드시 필요하며, 자발적 탄소시장이 그 통로가 될 수 있다.
자발적 탄소시장, 사회적 합의 필요해
그렇다면 진짜 문제는 이렇게 말 많고 탈 많은 자발적 탄소시장을 고쳐 쓸 수 있을 지로 넘어간다. 사람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반드시 고쳐 써야 하고, 고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교토의정서의 시장 메커니즘에 기원하고 있는 자발적 탄소시장은 교토의정서의 실패와 함께 사실상 방치되어 왔다고 해서 과언이 아니다. 교토의정서 발효와 함께 잠깐 반짝하던 CDM프로젝트와 자발적 탄소시장은 지난 20여년간 기나긴 침체를 겪었다. 거래가 일어나지 않는 시장에 누가 관심을 가지며, 누가 나서서 돈을 투자하고 시장을 제대로 감독할 것인가? 어떠한 시장이던 관심에서 벗어나면 제대로 된 감시가 이루어지지 않고, 소수 시장 참여자들의 편법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지금까지의 실패는 자발적 탄소시장이라는 시장 자체의 구조적 문제라기 보다는 침체된 시장에서 공통으로 겪는 문제로 판단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감축한 권리’라는 추상적 상품을 거래하는 자발적 탄소시장에 일반적 재화 시장보다 더 높은 수준은 감독절차와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현재 드러나고 있는 문제를 매섭게 비판해야 제대로 된 시장을 만들 수 있다. 그린워싱이라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사례도 무수하다.
하지만 비판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이제는 정부, 기업, 금융기관과 시민사회가 함께 모여, 자발적 시장의 역할에서부터 공급자는 어떤 기준으로 크레딧을 발급하고, 수요자인 기업은 또한 어떤 상황에서 어떠한 크레딧을 사용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수용가능한 지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에 나서야 할 때다.
※본 칼럼은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수석연구원이 한국경제신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칼럼 전문은 아래의 링크에서 자세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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