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는 죽지 않는다…다만 대체될 뿐이다
(미국서 고개 드는 ESG 회의론... 시대정신은 여전히 '지속가능성')
▲ “미국 기업에서 최신 금기어 : ESG”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이 달린 지난 1월 9일 <월스트리트저널> 기사
ⓒ 월스트리트저널
"다수의 회사가 더 이상 ESG라는 세 글자를 말하지 않는다." (Many companies no longer utter these three letters: E-S-G)
지난 1월 9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한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미국 기업에서 최신 금기어 : ESG"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을 달았고 이미지도 상당히 직감적이다. 손으로 입을 막고 눈도 가린 일러스트다. (생략) 기사 제목, 일러스트, 시작 글만으로도 ESG는 미국에서 '금기어'라는 인상을 이 기사는 전달한다.
2004년 처음 등장한 ESG(Environmental 환경, Social 사회, Governance 지배구조)라는 용어는 2006년 책임투자원칙(PRI)이 출범하면서 본격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ESG는 당초 투자자 관점에서 고안된 용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 주도, 바이든 집권, 코로나19 팬데믹이 화학적으로 결합하면서 전 세계에 '광풍'을 일으키며 주류로 부상했다. 그리고 기업, 시민사회, 정부 등 다양한 조직들이 ESG를 자신들의 미션과 전략 속에서 변주해 가며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그런데 ESG 회의론이 고개를 들더니, 최근에는 ESG 퇴출이라는 주장도 등장하고 있다. 이 주장이 옳다면, ESG는 탄생 20년 만에 중대 기로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ESG 회의론의 실체와 근거는 타당한가. 경제‧시장‧정치의 맥락 속으로 들어가 보자.
ESG 회의론의 진원지는 자본주의의 심장 격인 미국이다. 2022년은 코로나 팬데믹이 꺾이고 경기회복이 예상되었던 해다. 하지만 재난지원금 지급, 임금 상승, 공급망 차질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석유‧천연가스와 곡물 가격이 급등하는 등 고물가가 지속됐다. 미 연방준비제도는 고물가 대책으로 금리를 공격적으로 인상했고, 경기는 침체했다.
이에 따라 미국 시장에서 ESG 신규 펀드는 감소하고 자금도 급격히 이탈했다. (생략)
직접적인 원인은 수익률 감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통적인 화석연료 기업들의 주가는 급등했고, 이들 기업을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배제했던 ESG 펀드의 수익률은 감소했다. 이에 더해 금융상품의 그린워싱(가짜 친환경) 규제는 신규 ESG 펀드 설정에 부담을 주었다.
'수익'은 ESG 경영과 투자를 지속시키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부진한 시장 상황은 ESG의 주류 부상을 불편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미국 내 다양한 보수 세력들에게 ESG를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명분을 주기에 충분했다. (생략)
악의적 ESG 공격자들
미국의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은 ESG를 진보 담론으로 인식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미국 사회에서 기후변화와 불평등, 빈곤 등 모든 환경‧사회 문제를 포괄하고 있는 ESG 이슈는 진영 투쟁의 최전선이 되어 버렸다.
(생략)
반 ESG 캠페인은 반 ESG 입법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생략)
(기후위기 컨설팅 회사인) 플레이아데스 전략(Pleiades Strategy)이 발간한 '2024 반 ESG 주 법률 전망'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4년 1월 말까지 미국 38개 주에서 공화당 의원들이 '책임 있는 금융'을 공격하는 318개의 법안을 제출했고, 17개 주에서 37개의 반 ESG 법안이 통과되었다. 그러나 가결된 대다수 법안은 기업, 노동, 재무 담당자, 환경론자들의 강한 반대로 법안의 범위가 축소됐다.
(생략)
반 ESG 법안의 핵심 대상은 '금융기관'이다. 금융기관이 ESG의 동력이기 때문이다. 특히 넷제로(Net Zero) 관련 금융 이니셔티브인 '글래스고 금융연합'(GFANZ), 이 중에서 넷제로 보험연합(NZIA)은 공화당 집권 주 정부 법무장관들과 정치인들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았다. 연합의 활동을 미 연방 반독점법 위반 가능성으로 압박하자 30개에 달하던 회원사는 11개로 대폭 줄었다. (생략)
침묵과 탈퇴, ESG 포기 아니다
반 ESG 캠페인으로 인한 기업과 금융기관의 ESG 침묵과 이니셔티브 탈퇴 등은 ESG 회의론에 힘을 싣고 있다. 하지만 이는 과도한 해석이다. GFANZ를 탈퇴한 대부분의 금융기관은 법적 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 뿐 넷제로 달성을 위한 정책과 활동에는 변함이 없다고 천명한다.
블랙록 래리 핑크의 'ESG 용어 사용 전면 중단'도 사실 'ESG의 정치화'로 인한 논란 피하기다. 공화당 집권 주든, 민주당 집권 주든 미국의 모든 주가 블랙록의 큰 고객이며, 모든 주들이 소유하고 있는 공적자금은 포기할 수 없는 비즈니스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는 블랙록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모든 글로벌 금융기관에도 적용된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결정은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전략적 판단일 뿐 ESG 회의론 때문이 아니다. ESG를 내용상 포기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생략)
ESG 회의론은 아직 미국에 한정될 뿐 전 세계적인 현상은 아니다. 유럽에서 ESG는 여전히 견고하고, 아시아 등 그 외의 지역에서 ESG는 확산 중이다. 2023년 4분기에 미국, 일본에서 있었던 ESG 펀드런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 ESG 펀드의 순유입은 증가했다. 또 ESG 관련 일부 법‧제도‧정책에 대한 반대도 있지만 미국의 반 ESG 현상과는 결이 다르다. ESG에 대한 인정을 토대로 적용 대상과 시기와 강도 등이 문제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ESG 생태계 위해 '기본법' 제정 필요
우리나라도 ESG에 우호적이다. 물론 현 정부는 ESG 정책에 적극적이지 않다. (생략) 기업들도 ESG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점차 더 커지고 있고, 수출 대기업들은 상대적으로 더 적극적이다. 정치적 논쟁과는 별개로, 우리나라에서 ESG는 시장에서 현실적으로 요구받는 국제적인 시장 질서로 수용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우리나라 금융기관과 기업의 ESG 투자와 경영 수준을 말하자면 양적 성장 단계다. (생략)
그러나 속살은 여전히 형식적이거나 'ESG 워싱'인 경우가 많다. (생략)
우리 기업과 금융기관의 ESG 활동을 질적으로 제고하기 위해서는 'ESG 선순환 생태계 구축' 관점에서 법‧제도‧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생략)
그런 점에서 'ESG 기본법 제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기본법에는 ESG 정보의 공시(기업, 금융기관), ESG 정보의 검증, ESG 평가, 분류체계, ESG 공공조달, 공급망 실사, ESG 워싱 방지 등과 관련하여 정부 및 시장 참여자의 역할, 규제와 지원 규정을 종합적으로 담아야 한다.
▲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ESG 용어를 잊어라, 그러나 개념의 힘 무시 말라"
(생략)
"난 사람의 얼굴을 봤을 뿐 시대의 얼굴을 보지 못했소.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만 본 격이지. 바람을 보아야 하는데, 파도를 일으킨 건 바람인데 말이오."
송강호 주연의 영화 <관상>에 나오는 명대사다. ESG 등의 용어는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일 뿐이며, '바람'은 기후위기, 불평등, 빈곤 등 '지속가능성 문제'다. 용어에 집착하지 말고, 용어를 탄생시킨 배경을 주목해야 한다. (생략)
운동장은 이미 ESG, 아니 지속가능성의 시대로 기울어졌다. (생략)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장구한 역사에서 ESG 시대는 하나의 시기일 뿐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반 ESG 주장자들, ESG 회의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ESG는 죽지 않는다. 다른 용어로 대체될 뿐이다."
※본 게시물은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의 이종오 사무국장이 소셜코리아에 기고한 칼럼을 편집한 버전입니다. 칼럼 전문은 아래의 링크에서 자세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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