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맺지 못한 플라스틱 협약, 법적 프레임워크를 위한 경제 주체의 역할
[플라스틱 협약 무산… 기대만큼 큰 비판]
부산에서 열린 유엔 플라스틱 협약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가 주요 쟁점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종료되었습니다. 플라스틱 생산 감축, 유해 플라스틱 퇴출, 재원 마련 방안 등 핵심 쟁점에서 생산국과 소비국 간 입장 차를 결국 좁히지 못했습니다. 2년을 넘게 이어온 논의가 결실을 맺지 못한 것에 큰 충격과 아쉬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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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의 생산과 소비는 기후위기 대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슈입니다. 특히 이번 협약은 세계적, 법적 구속력을 가진 규제를 논의한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를 가졌습니다.
전 지구적인 합의를 이루어야 하는 만큼 더욱 정교한 논의가 필요했지만, 협상 기간 내내 공백이 드러났으며 개최국인 한국 정부가 협의를 성사시키는 데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2025년에 후속 협상을 다시 진행하기로 한 만큼, 우리 정부도 적극적인 논의와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 관점에서 이번 플라스틱 협약을 면밀히 돌아보고자 합니다.
[플라스틱 섬부터 기후위기까지]
‘플라스틱 섬’으로 대표되는 해양 쓰레기 문제는 플라스틱 폐기물이 환경을 오염시키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현재 플라스틱의 재활용률은 9%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폐기물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한 채 바다로 흘러가거나 어딘가에 묻혀있는 상태로 쌓이고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세계 플라스틱 생산 체계가 ‘비순환적’이며, 그 사용량과 폐기물이 계속해서 증가할 것이라 경고합니다. 2019년 기준 연간 3.5억 톤이었던 플라스틱 사용량은 2060년에는 10.1억 톤에 이르고, 폐기물 발생량 또한 같은 기간 4억 톤에서 11억 톤으로 증가할 전망입니다.
OECD의 글로벌 플라스틱 전망 보고서 데이터
특히 이번 회의에서 가장 쟁점이 됐던 것은 플라스틱 원료인 폴리머 생산 규제 여부였습니다. 플라스틱의 99%는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에서 추출한 폴리머를 원료로 생산하기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등 산유국은 폴리머 규제에 완강히 반대했습니다. 플라스틱의 생산을 감축하지 않을 경우, 2040년까지 플라스틱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이 전 세계 탄소 예산의 19%까지 차지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입니다.
[플라스틱 해결을 위한 새로운 노력]
플라스틱 문제가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환경정보공개 글로벌 플랫폼 CDP는 기업이 플라스틱 관련 활동, 영향, 위험, 기회를 투자자를 비롯한 이해관계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계를 2023년부터 새롭게 도입했습니다. 이를 통해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플라스틱 해결 정책을 설계하고, 실행 기반을 강화하겠다는 목표를 함께 내세우고 있습니다.
플라스틱 사용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기업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플라스틱을 관리하는 첫 단추라 할 수 있습니다. CDP는 부산에서 열린 INC-5에 앞서 진행된 INC-3 회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플라스틱 데이터가 정책 수립과 진행 상황을 추적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임을 밝혔습니다. 특히 “기업 데이터 공개를 협약의 핵심 조항으로 포함해야 한다”며 데이터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은 CDP 한국위원회 사무국으로서, 국내 기업들의 플라스틱 사용량, 폐기물 관리 현황, 감축 목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며, 데이터 기반 접근법의 기반을 다져가고 있습니다.
KoSIF는 데이터 공개와 함께, 플라스틱의 생산과 소비, 재활용과 폐기 등 전 과정을 아우르는 해결책에도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지난 6월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비즈니스포스트가 공동개최한 ‘2024 기후경쟁력포럼’에서는 단순히 재활용만으로는 플라스틱의 비순환적 생산 체계를 해결하기 어려우며, 석유를 원료로 새롭게 생산되는 ‘버진 플라스틱’의 생산 감축이 중요한 과제임을 지적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플라스틱 생산과 소비, 폐기를 아우르는 정의롭고 포괄적인 전환을 통해 순환경제를 구축할 것을 함께 촉구했습니다.
KoSIF는 CDP 한국위원회 사무국으로서, 국내 기업들의 플라스틱 사용량, 폐기물 관리 현황, 감축 목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CDP 한국위원회 2023 보고서 중)
[플라스틱 순환경제, 투자자에게도 중요]
플라스틱 문제는 투자자에게도 중대한 문제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는 환경적인 측면을 넘어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경제적 성과, 나아가 투자 포트폴리오의 안정성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안입니다. 책임투자원칙(PRI)는 2024 기후경쟁력포럼에서 플라스틱 오염 문제 해결을 위한 금융 부문의 역할을 강조하며, 투자자들이 순환경제로의 전환을 지원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또한, 플라스틱 순환경제가 투자자들에게 리스크 관리와 더불어 새로운 투자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중요한 영역임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플라스틱 가치사슬 전반이 정책 및 규제 리스크, 평판 리스크, 기후 관련 리스크, 건강 리스크 등 다양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과 맞닿아 있습니다. 반면, 플라스틱 순환경제는 투자자들에게 해결책이자 기회를 제공합니다. 환경 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새로운 소재, 포장 디자인, 비즈니스 모델, 기술 개발 등 다양한 투자 기회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플라스틱 순환경제를 위해 투자자들의 ‘스튜어드십’ 활동이 확대되어야 합니다. 특히, PRI는 투자자들이 플라스틱 오염에 대한 법적 구속력을 가진 국제 협약 개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난 캐나다에서 열린 제4차 국제플라스틱협약 정부간 협상을 앞두고 PRI는 생물다양성을 위한 생물다양성을 위한 금융재단, 비즈니스 연합, VBDO, CDP와 함께 플라스틱 오염에 대한 금융 부문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금융 부문의 목소리를 높이고 각국 정부가 플라스틱 오염을 막기 위한 정책 프레임워크를 수립하도록 촉구하기 위한 목적에서였습니다.
주요 촉구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 공공 및 민간의 재정 흐름을 조약의 목적과 일치시키기 위한 목표 설정
- 플라스틱 가치사슬 전반에 걸친 조화된 목표와 법적 구속력이 있는 의무 설정
- 기업들이 플라스틱 관련 리스크와 기회를 평가하고 공개할 수 있도록 지원
- 조화롭게 설계되고 확장된 생산자 책임 제도를 제공하는 등 플라스틱 오염을 해결하는 지속가 능하고 공정한 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정책 환경을 조성
- 민간-공공 파트너십, 혼합 금융 및 리스크 제거 메커니즘을 통해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시키기 위한 민간 투자 촉진
- 플라스틱 오염, 기후 변화 및 생물다양성 손실을 해결하는 금융 흐름 간의 시너지가 정책 및 규제 개입에 반영되도록 보장
기업과 투자자의 협력을 바탕으로 정책 환경을 강화하고 순환경제로의 전환을 이루는 것이 플라스틱 오염 해결을 위한 핵심적인 방향입니다.
[모두를 위한 프레임워크, 규제의 부담을 넘어 새로운 기회로 전환]
이번 제5차 정부간협상은 생산국과 소비국, 기업의 이익과 리스크, 플라스틱 오염 피해 지역 등 복잡한 요소들이 얽혀 있습니다. 이러한 이해관계자들의 결단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고차원적인 논의가 필요합니다. 특히 마지막 협상국으로서 우리 정부는 단순히 협상 장소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명확한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협약이 어떠한 성과도 없이 끝나면서 플라스틱과의 결별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특히 이번 회의 과정을 통해 한국 정부가 충분히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은 세계 4위의 플라스틱 생산국으로서 더욱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하나, 이번 협상에서 생산 감축 목표나 계획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유럽연합(EU)을 포함한 100개국 이상이 플라스틱 감축 제안을 지지했지만 우리 정부는 서명에 나서지 않은 부분도 아쉬운 대목입니다.
데이빗 앳킨 PR) 최고경영자는 2024 기후경쟁력포럼을 통해 “모든 경제 주체들이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프레임 워크가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단순히 일부 국가의 흐름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 주체로서 고민하고 논의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태도만이 플라스틱과 이별할 수 있는 길일 것입니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과 비즈니스포스트는 12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구 전경련회관) 다이아몬드홀에서 ‘2024 기후경쟁력포럼: 국제플라스틱협약이 온다, 순환경제를 준비하라’를 개최했다. (앞줄 왼쪽부터)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 박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화진 환경부 장관, 김영호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이사장, 강석운 비즈니스포스트 대표이사, 김상협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공동위원장, 서왕진 조국혁신당 의원, 임송택 에코네트워크 연구소장 등 주요 참석자들이 포럼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글로벌 협상은 2025년 추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제 협약은 모든 경제 주체들이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시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플라스틱 감축이 환경 문제와 함께, 경제적-사회적 지속가능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복합적인 이슈인 만큼 우리 정부도 더 적극 고민하고 해결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플라스틱 문제를 규제의 부담을 넘어, 경제와 사회의 새로운 기회로 전환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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