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책임투자는 만물을 소생시키는 ‘봄바람’이다
사회책임투자는 만물을 소생시키는 ‘봄바람’이다
KoSIF 김영호 이사장(현 유학대학 학장/전 산자부 장관)
‘당신의 일 만원이 기업을 바꾼다.’
당신의 좋은 돈을 좋은 기업에 투자함으로써 좋은 기업을 더욱 살리고 당신도 더욱 돈을 벌게 한다는 것이 사회책임투자(SRI: Sustainable & Responsible Investment)의 기본개념이다. 사회책임투자에서 좋은 기업이란 환경적(Environmental)으로 책임을 다하고, 노동, 인권 등의 사회적(Social) 이슈에 대해서도 책임을 다하며 지배구조(Governance) 또한 투명하고 건전한 기업을 말한다. 이러한 기업은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기 때문에 당신이 낸 일 만원은 최고의 수익률로 돌아온다.
이런 돈이 전 세계적으로 4,000조원에 이르고 무서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한국에도 이제 이 바람이 서서히 불고 있다.
사회책임투자는 1980년까지만 하더라도 기업윤리를 끌어올리기 위하여 개인이나 단체가 자기희생적인 사회운동, 혹은 종교운동의 성격을 가지고 행해졌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작은 미풍 수준이었다. 1980년대 이후에는 환경운동의 일환으로 사회투자가 크게 확대되었다. 1990년대 이후에는 연기금들의 주식편입 비중이 커짐에 따라 기관투자자들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투자자의 각종 리스크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지속가능성’을 중시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배당이 높다는 투자기법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미풍들이 모여 초봄의 바람 수준으로 확대되었다. 2006년 4월, 유엔 사무총장 코피아난은 세계 각국의 중요 연기금의 기관장들, 그리고 세계적 금융기관의 대표들과 함께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책임투자 원칙(PRI : Principles for Responsible Investment)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범지구적 흐름으로 자리잡으면서 ‘사회에 대한 책임’에서 ‘투자자의 책임’으로 바뀌었다.
사회책임투자는 당연히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개념과 만나게 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문제는 지속가능보고서 작성을 위한 가이드라인인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와 ISO 26000으로 국제표준이 진행되고 있어, 그 평가 기준에 따라 SRI 투자가 이루어진다. 물론 GRI와 ISO 26000은 강제 규정은 아니다. 문제는 이 가이드라인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기업은 세계적으로 투자와 소비의 기피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삼성의 경우, 무노조와 지배구조의 불투명서으로 인해 ISO 26000이 매기는 기업평가지수가 낮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투자와 소비의 대상에 포함되지 못할 수 있다.
사회책임투자는 소비의 사회적 책임, 노동의 사회적 책임 개념과 만나 이제 21세기 세계경제의 새로운 바람으로 등장하고 있다. 다보스 포럼에서도 사회책임투자가 세계 금융회사들의 주된 투자기법으로, 즉 주류 트렌드로 발전할 것이라는 보고를 한 바 있다. 또 미래학자 패트리셔 애버딘은 『메가트랜드 2010』에서 “깨어있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며 이런 기업에 대한 SRI의 물결은 곧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훌륭한 수익률을 내는 상품으로 알려질 것”이라는 말로 사회책임투자 시대를 예견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모순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하겠지만 상당히 바꾸어 놓을 것만은 틀림없다.
얼마 전 일본의 매스컴(니혼게이자이 신문)에서는 국제 SRI 자금이 일본에 대량 들어오고 있다는 기사가 1면 톱으로 보도된 바 있다. 한국시장에 국제 투기자본이 대량 들어오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이는 SR(Social Responsibility)을 위한 ISO 26000 표준화 작업에 일본 업계, 노동계, 시민사회의 적극적 태도과 한국의 업계, 노동계, 시민사회가 소극적 태도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한국경제의 문제점이 이보다 더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측면이 어디 있을까.
사회책임투자의 바람은 이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본격적으로 불고 있고 한국경제에 상륙하고 있다. 현재는 아직 12개 정도의 펀드가 마련되고 있어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지만 본격적인 바람이 예견되고 있다. 돈에 영혼을 불어넣어 윤리적인 투자, 깨어있는 돈 쓰기를 하는 것과 그것이 가장 큰 수익을 가져온다고 하는 결과가 일치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 가장 윤리적인 것이 가장 경제적인 것이 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경제이다.
투자자에게는 안정적이고도 높은 수입을 보장하고 기업에게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주주를 확보하게 함으로써 장기적인 경영과 안정적인 시장 창출의 기회를 확대함으로써 기업경쟁력을 크게 향상시켜주는 것이야말로 윈-윈 게임이다. 결과적으로 국가의 투명성과 경쟁력을 높여주고 자본과 노동의 대립, 경제와 사회의 갈등,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갈등을 해소시켜 사회통합을 가능하게 해준다. 아름답고 따뜻한 공동체를 가져오는 SRI의 바람이야말로 만물을 소생시켜 주는 봄바람이다. 우리 사회의 각계각층은 적극적으로 봄바람 맞이에 나서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