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기고] 국제 플라스틱 협상, 한국에 위기이자 기회(한경ESG)
오는 11월 부산 협상 결과, 국내 산업과 우리 일상에 변화 예상
우리 기업의 고부가가치 시장 선점 기회... 플라스틱 관련 정부정책의 일관성 필요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김태한 수석연구원 기고
사진출처:unsplash
초록색 테이블 위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하얀색과 빨간색의 당구공. 당구공은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의 역사는 당구공에서 시작한다. 1863년 뉴욕타임즈에는 당구공을 만들 물질을 가져오는 사람에게 상금 1만달러를 지급하겠다는 광고가 실렸다. 당시 당구공은 코끼리 상아로 만들었는데, 상아 하나로는 고작 6~8개의 당구공 밖에 만들 수 없었다고 한다. 무분별한 밀렵으로 코끼리 개체 수까지 줄어들면서 안 그래도 비싼 당구공의 가격은 더욱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1868년 미국의 인쇄출판업자이자 발명가인 존 하이엇(John. W. Hyatt)은 수 차례의 실패 끝에 마침내 천연 합성수지 플라스틱인 셀룰로이드를 이용한 당구공을 만들었다. 물론 그가 개발한 플라스틱은 깨지기 쉬워 당구공의 재료로는 적합하지 않았지만, 이후 플라스틱은 급격히 발전하여 우리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물질로 자리 잡았다.
플라스틱은 실로 우리 일상 모든 곳에 존재한다. 주위를 잠깐만 둘러보자. 플라스틱 없는 곳을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옷이나 TV, 에어컨 등 가전제품 그리고 우리가 마시는 음료수 병까지 플라스틱은 모든 곳에 있다. 뿐만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도 플라스틱이 숨어있다. 수돗물이나 천일염, 조개나 물고기에서도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지질학계에서 현재 홀로세를 끝내고 1950년대 이후를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로 구분하자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 지표물질 중 하나가 바로 플라스틱 암석이라고 한다.
플라스틱은 값싸고, 안전하고, 편리한 물질이다. 코끼리 상아뿐만 아니라 동물의 가죽이나 깃털 등 수많은 천연물질을 대체하여 자연자원의 무분별한 남용을 억제해왔으며, 위생용품의 소재로 사용되어 인류의 보건 수준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코로나 위기에서 우리를 지켜준 마스크나 검사기구와 주사기 모두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플라스틱의 이러한 편리성은 남용을 불러왔다. 그리고 이제 플라스틱이 불러온 환경오염과 건강위협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플라스틱은 결합력이 강한 탄소를 여러가지 형태로 결합하여 만들어 진다. 대부분의 플라스틱은 석유의 정제과정에서 나오는 나프타를 이용해 생산하는데, 에틸린이나 프로필렌과 같은 기초원료를 만들고 결합하는 과정을 거친다. 탄소의 강한 결합력은 플라스틱이 쉽게 변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쉽게 분해되거나 썩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플라스틱의 원료물질로 사용되는 석유 등과 같은 화석연료는 온실효과의 주범으로 기후변화를 막기위해 반드시 대체되어야 하는 물질이기도 하다.
OECD에 따르면, 전세계 플라스틱 사용량은 2019년 3.5억톤에서 2060년 10.1억톤으로 지속해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도 현재 연간 4억톤에서 2050년에는 11억톤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렇게 발생한 플라스틱 폐기물은 현재 대부분은 바다나 매립지로 흘러 들어 가고 있으며, 재활용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아울러 플라스틱과 관련한 온실가스 배출량도 2040년까지 전세계 탄소예산의 19%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최근 플라스틱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짐에 따라, 플라스틱 규제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2022년 3월 제5차 유엔환경총회(UNEA)에서는 2024년까지 법적 구속력을 가진 국제협약을 마련하기로 결의했다. 현재까지 4차례 협상이 진행되었고, 오는 11월 우리나라 부산에서 협약내용 완성을 위한 최종 ‘정부간 협상위원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이번 협약은 플라스틱 생산, 소비, 폐기물 예방×관리×처리까지 전 주기에 관한 의무사항을 설정하고 모니터링 체계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협약 대응을 총괄하는 환경부에 따르면, 재활용 강화 등 폐기단계의 조치 도입에 대해서는 국제적 공감대를 이룬 가운데 플라스틱 원료 생산 감축 의무 부과 여부가 핵심쟁점으로 남아 있다. 중국, 러시아 등 후발 생산국은 생산 감축 의무 부과 자체를 반대하고 있는 반면, EU, 아프리카 등 소비국은 생산 감축 의무 도입을 지지하고 있다고 한다. 목표 설정과 관련해서도 기후변화 협약의 교토의정서와 같이 국제적 공동 목표를 먼저 수립한 후 국가별로 하향하는 방안과 파리협정처럼 국가별로 자체 목표를 제시하도록 하는 방안이 맞서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석유화학 강국 가운데 하나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는 미국, 중국 그리고 사우디에 이은 세계 4위의 에틸렌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석유화학업이 국내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매우 높다. 또한 1회용 플라스틱 사용이나 포장에 플라스틱 소재 사용 비율도 매우 높다. 오는 11월 부산에서 정해질 협상의 결과에 따라 국내 산업과 우리의 일상에도 엄청난 변화가 예상된다.
플라스틱 협약은 우리 기업에게 위기이자 기회이다. 최근 중국의 급격한 설비 증설로 범용 플라스틱 가격이 빠르게 떨어지면서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관점에서 보면, 플라스틱 협약의 체결은 친환경 플라스틱 개발에 앞서 투자하고 있는 우리기업이 고부가가치 시장을 선점할 기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한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플라스틱 문제의 해결 책임을 기업에만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애플은 아이폰이라는 제품 혁신을 통해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었고,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었다. 하지만 플라스틱은 다르다. 새로운 개념과 기술로 소비자에게 전에 없던 효용을 가져다 주었던 스마트폰과 다르게, 기술 혁신을 통해 만들어 질 친환경 플라스틱이나 대체소재는 소비자에게 전혀 새로운 기능적 효용감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 당분간은 성능은 비슷하거나 낮지만 오히려 가격은 비싼 대체재 정도가 될 것이 자명하다. 기업의 기술 혁신과 함께 소비자의 인식 혁신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해 줄 일관성 있는 정부정책이 함께 해야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본 칼럼은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수석연구원이 한국경제신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칼럼 전문은 아래의 링크에서 자세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원문 보러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