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기고] 기후 공시 우려 급증, 제도 안착 준비 시급(한경ESG)
기후공시 포비아(Phobia), 실제 자본시장법 집행 살펴보면 우려 해소될 것
과도한 우려가 역설적으로 우리 기업 경쟁력 저하하고 부담 가중시킬 수 있어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김태한 수석연구원 기고
‘기후공시가 의무화되면 기업의 법적 또는 소송 리스크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최근 경제단체나 법무법인 등에서 심심찮게 들려오는 목소리다. 법적 리스크에 기업이 충분히 대비할 수 있도록 공시의무화 시기를 대폭 늦춰야 한다거나, 의무공시가 아닌 자율공시로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기후공시 공포증, 실제 자본시장법 규제 살펴보면?
만약 기후변화를 포함한 지속가능성 공시의 보고 채널이 ‘사업보고서’로 결정된다면, 기업은 사업보고서 공시 의무를 담고 있는 자본시장법의 규제를 받게 된다.
자본시장법 162조는 사업보고서 중 중요사항에 관한 거짓 또는 누락이 있을 경우, 기업에 투자자가 입은 손실에 대한 배상책임을 두고 있다. 아울러 164조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사업보고서 제출대상법인에 대한 자료요청과 조사 권한을 부여하고 있고, 중요정보에 대한 거짓이나 누락이 발견될 경우 정정을 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필요시에는 주식의 발행 및 거래 정지, 임원에 대한 해임권고, 20억 원 미만의 과징금(429조) 부과 등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5년 이하의 징역형(444조) 등도 명시하고 있다. 실제로 법률 상의 처벌 조항이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법률에 ‘10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고 해서 관련한 모든 범죄에 대해 10년형이 선고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지속가능성공시 의무화로 인한 기업의 법적 리스크를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법률이 어떻게 규정하고 있느냐 뿐만 아니라 실제로 어떻게 집행되고 있는 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먼저 금융감독원의 공시위반에 대한 조치를 살펴보자.
금융감독원은 매년 사업보고서 제출 회사 전부 또는 일부를 대상으로 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의 사업보고서 점검은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불시 점검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사업보고서의 충실한 작성과 정정 유도를 목적으로 기업이 충분히 준비할 수 있도록 중점 점검 사안을 지정하여 매년 2월 사전 예고하고 있다.
2023년 점검 결과에 따르면, 105개 회사의 116건의 공시의무 위반에 대한 조치가 취해졌는데, 조치의 87.9%는 경고, 주의 등의 경조치인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이 밝힌 주요 위반 사례도 증권 신고서 미제출, 주요사항 보고서의 전환사채 발행 시 담보 제공 사실 누락 등이었으며 사업보고서 상의 비재무영역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지속가능성공시와 유사하게 상당한 예측정보를 포함하고 있는 사업보고서 상 ‘이사의 경영진단 및 분석의견(MD&A)’ 영역에 대한 중점점검을 실시한 2022년 점검에서도 벌금 등의 중조치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다음으로 허위공시에 대한 실제 소송 및 배상책임을 보자.
먼저 자본시장법 162조에는 결과적으로 중요사항에 대한 거짓 기재나 누락이 발생한 경우에도, 배상 책임자(기업의 대표이사, 사업보고서 작성, 지시자 등)가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음을 입증하면 배상책임을 지지 않도록 하는 면책조항을 두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울러 결과적으로 부정확한 정보가 될 가능성이 높은 예측정보에 대해서도 그 정보가 예측정보라는 사실과 예측과 관련된 가정이나 판단 근거 등을 제시하면 배상 책임을 면하도록 하고 있다. 참고로 기후공시와 관련한 상당수의 정보는 예측정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러한 면책 조항에도 불구하고 사업보고서 작성 부주의 등으로 인해 면책조건에 충족되지 않는 부정확한 정보가 공시로 인한 소송 리스크는 여전히 남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공시위반과 관련한 법원의 판례를 살펴보면 분식회계 등 재무제표 관련사항이나 주가조작을 위한 투자유치 등의 호재성 이슈에 대한 허위공시에 따른 처벌은 대다수였으며, 정상적 경영활동에 대한 기업 경영진의 판단 오류에 대한 판결은 보이지 않았다.
현재까지 금융감독원의 조치 기조나 소송 사례 및 법원의 판결 방향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지속가능성 공시가 의무화된다고 해서 정상적 경영과정에서 발생한 기후변화 및 기타 지속가능성 이슈에 대한 경영진의 판단 오류나 의도성이 없는 기재 오류 등으로 인해 소송이나 처벌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해석할 근거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최근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기업의 그린워싱과 관련한 환경단체의 고발이나 분쟁이 늘고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들은 모두 기업의 광고나 홍보 활동에 대한 표시광고법 또는 환경기술산업법 위반에 대한 고발이다. 기후공시 의무 대상이 될 대다수 기업은 이미 지속가능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는데, 보고서 내에 중요한 거짓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면 지금도 얼마든지 표시광고법이나 환경기술산업법 위반 등으로 고발할 수 있다. 공시가 의무화되고 관련 정보들이 사업보고서로 이동한다고 해서 갑자기 소송이나 처벌이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한다고 그 역시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논리다. 물론 이러한 소송이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포장을 바꿔 제기될 수는 있겠지만 이 때문에 기업이 직면할 소송의 총량이 늘어난다고 보기는 어렵다.
과도한 우려, 역설적으로 우리 기업 경쟁력 저하하고 부담 가중시킬 수 있어
최근 경제단체의 법적 리스크에 대한 우려는 지나치게 과도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면 누구나 걱정하게 된다. 그리고 준비를 위한 시간과 지원을 늘려달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과도한 우려가 우리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제도의 도입을 막는다면 이는 전혀 다른 문제다.
경제단체들이 실제로 법적리스크를 우려하고 있는지, 아니면 공시 도입을 늦추기 위해 전략적으로 법적리스크 우려를 활용하고자 하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만 공시 의무화 시점을 늦춘다고 해서, 우리 기업의 공시 부담이 낮아지거나 늦춰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현실도 반드시 직시해야 한다. 국내 주식시장의 외국인 비중은 이미 30%를 넘어섰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의 지속가능공시제도 도입이 늦춰줬다고 해서, 국내기업에 대한 ESG 정보 공개 요구를 멈출 리 없다. 설사 이들이 이러한 요구를 멈춘다고 한들 전혀 기뻐할 일이 아니다. 이는 늘어나고 있는 ESG 자금의 이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구글, 애플 등 공급망 지속가능성 관리 수준을 높이고자 하는 해외 고객사의 정보 요구도 국내 공시 제도 도입과 무관하게 지속될 것임은 분명하다.
기업공시제도는 다수 이해관계자들의 개별적 요구를 한 번에 대응할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다. 경제계의 ESG 공시 의무화 지연 요구가 역설적으로 우리 기업의 정보 제공 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지 걱정된다.
※본 칼럼은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수석연구원이 한국경제신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칼럼 전문은 아래의 링크에서 자세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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