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도 기후변화를 통상 무기로 활용한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김태한 수석연구원 기고
우리 속담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는 말이 있다. 수단과 방법이야 어찌되었든목적만 달성할 수 있으면 된다는 뜻이다.
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47대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했다. ‘모로 가도 미국만 잘되면 된다’는 더 강력해진 미국 우선주의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
보호무역은 원래 민주당의 전유물
트럼프 1기의 기억이 워낙 강렬하게 각인되어서 인지 몰라도, 많은 사람들은 미국 민주당이 트럼프의 공화당에 비해 자유무역에 대해 더 적극적이고 보호무역을 반대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은 그 반대다.
레이건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꽃 피운 ‘신자유주의’와 ‘자유무역’은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 이전까지 공화당의 핵심 정책 기조였다. 반대로 자유무역으로부터 자국 산업과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에 훨씬 적극적으로 나서 왔던 쪽은 민주당이었다. 실제로 슈퍼301조와 같은 무역 보복조치를 되살려 활용한 것도 민주당의 클린턴 행정부였고, 오바마 행정부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기부양책에 미국산 제품 사용의 의무화 또는 우대하는 Buy American 조항 넣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미국에서 어떤 정치세력이 자유무역을 더 선호하는 지를 구분하는 것은 더이상 무의미하다. 양당 모두 누가 더 강력한 보호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가를 가지고 다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1기에 취한 대중 보호무역 조치를 해제하지 않고 오히려 강화했으며, 트럼프와 대통령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민주당 해리스부통령도 보호무역를 강화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으니 말이다.
해외오염관세법 vs. 청정경쟁법
잘 알려져 있다시피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과학 자체를 불신한다. 지구온난화를 중국이 지어낸 사기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파리협정도 다시 탈퇴할 것 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런데 만약 기후 관련 정책이 미국 경쟁력 회복에 도움이 된다면, 트럼프는 어떤 선택을 할까?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같은 바이든 식의 미래 기후기술 경쟁력 확보 문제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당장에 자국 산업보호를 위해 기후이슈를 통상적책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 시험대가 바로 ‘해외오염관세법(Foreign Pollution Fee Act, FPFA)’이다. 현재 미국 의회에는 탄소국경세와 관련된 몇 가지 법안이 발의되어 있다. 민주당 중심으로 발의된 대표적 법안이 ‘청정경쟁법(Clean Competition Act)’이고, 공화당이 발의한 법안이 바로 ‘해외오염관세법’이다.
두 법안은 미국 제품과 비교해 온실가스 배출이 상대적으로 많은 수입품에 관세를 매기겠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EU에서 시행하고 있는 EU탄소국경조정제도(CBAM)과도 그 결이 같다.
하지만 ‘해외오염관세법’이 나머지 법안이나 제도와 구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이 하나 있는데, 그 것은 바로 ‘자국제품에 대한 탄소비용’부과 여부다. EU는 이미 시행하고 있는 ‘EU 탄소배출권거래제도’를 통해 역내 기업에 탄소비용을 부과하고 있다. 민주당이 발의한 ‘청정경쟁법’은 미국 산업 별 탄소집약도 성과 기준을 제정한 후, 기준을 초과한 제품의 생산기업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방식의 탄소가격 제도 도입을 포함하고 있다. 성과기준은 점진적으로 강화하고, 벌어들인 벌금은 기후변화 정책에 재투자하겠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반면 ‘해외오염관세법’은 미국 기업에게는 추가적인 탄소규제나 의무도 부여하지 않는다. 미국산 제품의 비교해 탄소배출집약도가 높은 수입품에 대해 벌금을 부과할 뿐, 자국 기업에 대해서는 어떠한 보고나 비용 부담도 추가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청정경쟁법’이 ‘우리도 추가적인 노력을 할 테니, 당신도 하라’는 식이라면, 공화당의 ‘해외오염관세법’은 ‘우리는 이미 충분하니, 당신들만 하시오.’라는 정책인 것이다. 당연하게도 대상 품목도 미국이 이미 상대적인 배출집약도가 낮은 제품을 위주로 구성했다. 게다가 자유무역협정(FTA)나 파트너십을 맺은 국가에는 관세를 면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이를 외교적 무기로 활용할 수 있는 길도 마련해 두고 있다.
트럼프는 과연 기후변화도 통상무기로 활용할 것인가??
당연히 이 법안은 WTO 규정 위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WTO는 수입품에 대한 수입 국가 간 차별(GATT 1조, 최혜국대우)와 내국 제품과의 수입품간의 차별적 조치(GATT 3조, 내국민대우)를 금지하고 있다. EU의 CBAM이 수입제품의 부과금 최고액을 ‘역내 기업이 EU에서 지불한 탄소비용과 수입제품이 해외에서 지불한 탄소비용의 차이’로 정한 것도 WTO ‘내국민대우’ 위반을 피하기 위해서 였다. 이 법안은 자국기업에게 부과하지 않는 벌금을 수입품에만 부과하겠다는 것이므로 당연히 ‘내국민대우’위반일 것이고, 자의적으로 특정 국가만 면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최혜국 대우’도 위반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차례 WTO 무력화를 공언하고 있는 트럼프와 공화당이 WTO 규정 따위를 크게 신경 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해외오염관세법’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미국만 다시 잘살면 된다는 트럼프식 보호무역정책에 그야말로 안성맞춤인 법안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다면, 이 정책이 기후변화를 명분으로 걸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트럼프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Make America Great Again)’, 자신이 부정하는 기후변화 마저 이용할 것인지 지켜볼 대목이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2025년 경제정책방향에도 ‘해외오염관세법’에 대한 동향 점검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나라도 중국 못지 않게 주요 산업의 탄소집약도가 높은 수준이다. 트럼프가 자국 우선주의에 ‘기후변화’라는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면, 우리 경제도 큰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우리 산업의 중장기적 경쟁력 확보를 위해 일관되고 강화된 기후정책 추진과 더불어, 단기적 충격을 방어하기 위한 외교력 회복이 절실한 상황이다. 서둘러 탄핵정국이 마무리 되어, 정부가 본래의 역할을 회복하기를 기대한다.
<해외오염관세법, 청정경쟁법, EU탄소조정국경제도 비교표>

※ 본 칼럼은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수석연구원이 한경ESG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칼럼 전문은 아래의 링크에서 자세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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