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ESG 공약 ②
불안한 SEC 기후 공시, 살아남을 수 있을까
2024년에도 ESG 관련 가장 큰 화두는 단연 공시 의무화다. 비록 금융위원회가 당초 2025년으로 예정되었던 공시 시기를 2026년 이후로 연기했지만, 자회사의 자료까지 수집하고 관리해야 하는 기업들은 여전히 시간이 촉박하다. 특히 올해 1분기 중으로 공시기준 초안이 발표될 것이라고 하니, 하반기부터는 기업들의 공시 준비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생각된다.
기후변화 또는 지속가능공시의 3대 축은 EU기업지속가능성공시지침(CSRD), 국제회계기준(IFRS) 지속가능성공시기준, 그리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기후공시기준이다. EU는 세부공시기준을 확정하여, 2025년(2024년 정보)부터 공시를 시작한다. IFRS도 지난해 지속가능성공시에 대한 전반적인 기준을 담은 S1과 기후변화 관련 세부 공시 기준인 S2를 확정했다. 향후 생물다양성, 인권 등 다른 ESG 분야 기준도 순차적으로 확정할 예정이다.
반면 미국은 2022년 3월 기후공시기준 초안을 발표한 이후, 아직 최종기준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SEC의 기후공시기준은 미국 증시에 상장된 기업에 한해 적용된다. 사실 미 증시에 상장된 한국기업은 10개 남짓에 불과하여, SEC 규정을 직접 적용 받는 국내 기업은 많지 않다. 하지만 공시에 공급망 이슈가 포함되어 있어, 다수의 국내기업이 애플, 구글, GM 등 미국 고객사로부터 정보 요청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수출 중심의 한국 기업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미국이 국제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미국의 정책 기조에 따라 자국 정책을 수정할 가능성도 높다. 실제로 우리나라 금융위원회도 공시 시점 연기 이유 가운데 하나라 미국의 공시의무화 지연을 들기도 했다.
미국 SEC의 기후공시기준 확정이 늦어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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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높은 이해관계자의 관심도다. SEC는 공시초안 발표와 함께 의견수렴 과정을 거쳤는데, 무려 6,000개 이상의 기업, 금융기관 및 환경단체 등에서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시규정 자체의 복잡성과 이해관계자들의 관심도 등을 고려한다면, 검토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음은 공시 내용의 확정이다. EU 및 IFRS와 마찬가지로, SEC도 초안에 Scope 3 배출량 공시 의무화를 담았다. 공시대상 기업의 Scope 3 배출량 산정 부담 및 정보의 정확성 등을 이유를 Scope 3 배출량을 공시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의견과 기업의 미래 가치를 판단하기 위한 핵심 정보이기 때문에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게 대립하면서 결정을 연기하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유는 정치적 고려다. 최근 기후공시 및 ESG자체가 정치쟁점화 되면서, 공화당의 반대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아울러 트럼프 전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함에 따라, 정치적 부담을 고려해 판단을 미루고 있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SEC는 올해 봄까지 기후공시기준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생략) 만약 이번 기회를 놓치고 미국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될 경우, 기준 확정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기후공시에 적극적인 바이든 행정부나 미국 민주당 입장에서도 이 같은 최악의 상황은 피해야 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최종안을 어떻게든 확정하려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트럼프 2기, 기후공시의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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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SEC가 올해 3월 기후공시기준안을 확정하고,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하게 된다면 SEC 기후공시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분명히 뒤집으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미국은 삼권분립 국가다. 행정부, 의회 그리고 사법부 차원의 시도가 가능하다.
전회에 다룬 401K퇴직연금의 ESG투자와 마찬가지로, 바이든 행정부는 SEC 기후공시의무화 또한 법안 개정이 아닌 행정규정 변경을 통해 추진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IRA(인플레감축법)을 제외한 바이든 행정부의 기후변화 정책 대부분이 입법이 아닌 대통령 행정명령을 통해 추진되고 있어, 트럼프 전대통령이 재집권하게 된다면 상대적으로 용이하게 수정이나 폐지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우리의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합쳐 놓은 조직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데, 5명의 위원(commissioner)이 중심이 되어 의사를 결정하는 독립 정부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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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공시의무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현 의장인 게리 겐슬러의 경우 2026년 6월 임기가 만료되며, 연임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이론적으로는 민주당 추천이 다수를 차지하는 2026년 상반기까지는 기후공시의무 폐지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임 대통령이 추진하는 사안의 이행을 행정기관에서 거부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뿐더러, 거부한다 해도 폐지는 결국 시간 문제일 뿐이다.
또한 입법을 통해 기후공시의무화의 시행을 조기에 막는 방안도 있다. (생략) 현재는 하원은 공화당이 다수의석을 차지하고 있고, 상원은 50대 50으로 동석이나 부통령 투표권을 가진 민주당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번 대선과 함께 하원의원 전원과 상원의원 33석에 대한 선거가 함께 치러진다. 상원의 경우 공화당의 우위가 점쳐지는 가운데 현 의석구조만 유지한다 하더라도,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부통령 투표권을 확보하는 공화당이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하원의 경우, 현재 공화당이 다수당의 차지하고 있으나 대통령선거에서는 이겼지만 하원 장악에 실패한 사례도 많아 예측이 어렵다.
주(state) 차원의 기후공시에 주목해야
하지만 행정 및 입법을 통한 공시의무화 폐지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기후공시는 지속될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미국의 정식 국가명칭이 ‘United State of America’ 라는 것이다. 미국은 주차원에서 상당한 수준의 독립적 행정, 입법, 사법권을 가진다. 이미 미국 전체 GDP의 15%를 차지하는 캘리포니아에서는 2026년(회계연도 2025년)부터 주내에서 영업하는 매출액 10억 달러 (약 1조3천억원) 이상의 기업을 대상으로 TCFD 권고안에 기반한 기업 기후공시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다. 캘리포니아뿐만 아니라 뉴욕, 일리노이, 메사추세스, 워싱턴 등에서도 유사한 공시 제도 도입을 추진 또는 검토 중이다. (생략) 캘리포니아 주 하나의 GDP가 독일이나 일본에 버금간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주 차원의 공시제도가 미치는 영향력 또한 강력할 것으로 생각된다.
※본 칼럼은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수석연구원이 한국경제신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본 게시물은 편집본이오니, 칼럼 전문은 '한경ESG' 매거진 2월호 또는 아래의 링크에서 자세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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