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언론 인터뷰] 워터리스크, 물이 산업안보다: 상암 월드컵경기장 크기 건물이 '정수기', 삼성전자가 물에 진심인 까닭(비즈니스포스트)2023-09-08 10:59
작성자 Level 10

 

상암 월드컵경기장 크기 건물이 ‘정수기’, 삼성전자가 물에 진심인 까닭

 

삼성전자 화성캠퍼스의 항공 사진.
주변 아파트와 크기를 비교해 보면 화성캠퍼스 내 건물들이 상당히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삼성전자>

 

[비즈니스포스트] 거대하다.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내 초순수* 제조 설비가 있다는 UT4동 앞에 섰을 때 첫 인상이다.

*초순수란 복잡한 공정을 거쳐 수중 오염 물질(전기전도도, 고형 미립자수, 생균수, 유기물 등)을 전부 제거한 순수(純水). 반도체 제조공정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됨.


비즈니스포스트는 8월21일 삼성전자의 물 관리를 취재하기 위해 삼성전자 EHS센터 환경팀의 구태완 박사와 만나 화성캠퍼스 UT4동을 방문했다.

UT4동 건물은 어림잡아 10층 이상 아파트 건물 수십여 개 동을 합쳐 놓은 정도 크기였다.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 규모와 비슷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단일 건물이 공간의 낭비 없는 정직한 직육면체 모양으로 서 있으니 상당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높이에 주목하게 되는 초고층 빌딩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공장 내부로 들어가니 사람이 다니는 통로와 제어를 위한 공간 일부 외에 대부분 공간은 구불구불한 배관과 배관 사이 여과장치, 분류장치로 채워져 있었다.

 

드넓은 공간에 끝없이 이어져 있는 배관과 장치들을 보며 문득 이 거대한 공장 건물 내 설비에서 초순수 제조 설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궁금해졌다.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구 박사는 웃으며 답했다.

“이 건물 전체죠.”

공장에 들어설 때만 해도 초순수를 만드는 설비는 공장 건물 한편에 적당히 자리잡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이 한참을 빗나갔다. 이 거대한 건물 하나가 그대로 초순수를 만드는 ‘정수기’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현장 안내를 맡아 동행한 삼성전자 인프라기술센터 FT1팀의 최우영 프로는 “UT4동은 연결된 라인이 크지 않아 다른 UT동 대비 규모가 크지 않은 편”이라며 “초순수 처리 공정은 UT동에서 최종 완료되지 않고 팹에 공급될 때 팹 동에서 추가로 작업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물 관리의 핵심, 수질에 따른 용도를 정교하게 세분화

최 프로는 이어 공장 내 제어 화면에서 공정 계통도를 보여주며 초순수 제조공정을 설명했다.

최 프로의 설명은 간단했으나 초순수 제조공정은 간단하지 않았다. 초순수 제조공정이 크게 전처리, 순수처리, 초순수처리 공정으로 구분된다는 점 등 대략적인 공부를 하고 취재를 시작했지만 실제 공장에서 마주한 공정 계통도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복잡했다.

많은 선과 타원의 조합으로 이뤄진 공정 계통도가 표현하고 있는 초순수 제조공정의 세분화 수준은 기자 같은 비전문가가 몇 번 설명을 들어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됐다.

수질에 따라 정교하게 세분화된 관리는 삼성전자의 물 관리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다.

 

구 박사는 “초순수를 만드는 과정에서 깨끗한 물과 더러운 물을 거르는 단계를 여러 차례 거치는데 여기서 말하는 초순수가 되지 못한 더러운 물이라 해도 다른 용도로 쓰기에는 충분히 깨끗한 물”이라고 말했다. 

이 “초순수 제조 단계는 물론 공정 뒤 발생하는 폐수 처리까지 각 단계에서 발생하는 물의 수질에 따른 활용을 최적화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고 이는 물 사용량 저감 등에 큰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내 공정용수 재이용 시설의 모습. <삼성전자>

 

삼성전자가 물에 진심인 까닭, 반도체를 만들려면 물의 양과 질을 모두 잡아야

삼성전자는 왜 이토록 거대한 시설을 만들어 고도의 관리를 기울일 정도로 ‘물’에 공을 들이는 것일까?

반도체 생산에서 물의 중요성을 떠올리는 이는 많지 않다. 반도체 제조에 실제로 쓰이는 물의 양과 물에 들여야 하는 노력까지 알고 있는 이는 더욱 드물 것이다.

 

반도체 제조는 일반적으로 8단계의 공정을 거친다. 식각공정 등 주요 단계마다 세척, 이온 제거를 하면서 물이 사용된다. 통상적으로 6인치(150mm) 지름의 웨이퍼 한 장을 만들어 내는 데만 1.5톤의 물이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의 2023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보면 2022년 기준 DS부문의 취수량은 1억5398만8천 톤에 이른다. 인구 수만 명의 중소도시 하나가 두 달 이상 쓸 수 있는 양이다. 

게다가 반도체 제조 공정에 사용되는 물은 그냥 물이 아니다. 극도로 정제해 물속에 섞여 있는 미생물, 미립자 등을 최대한 제거한 초순수(超純水, Ultrapure Water)다.

반도체 생산에 초순수 사용은 필수다. 식수로 쓰일 정도로 깨끗한 물에도 다양한 무기물 혹은 미생물 등 불순물이 섞여 있는데 이런 불순물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제조와 같이 미세한 공정에서는 불량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초순수는 기준도 까다롭다. 미립자는 직경 0.1μm(마이크로미터) 이하의 것이 ㎤당 20개 이하, 생균은 100㎥당 1개 이하라는 기준을 만족해야 초순수로 인정된다. 월드컵 경기장 전체를 가득 채운 물에 참깨 한 알도 안 되는 정도의 불순물만이 허용되는 수준이다.

즉 반도체 제조를 위해서는 대량의 물을 확보해야 하고 확보된 물은 극한의 순도까지 정제한 뒤 사용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물에 진심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CDP한국위원회를 맡고 있는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의 김현정 연구원은 "반도체 시장 확대에 따른 생산 증대는 기업의 물 환경 영향력을 높이는 요인"이라며 "삼성전자가 이러한 환경 부담을 줄이기 위해 물 재이용률 증가, 수자원 관리 시스템 강화, 공급망 인게이지먼트 강화 등의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어 "삼성전자가 글로벌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물과 관련해 노력을 기울이는 일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특히 기후변화로 국내외 사업장의 물 리스크 취약성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미래를 대비한 전략 수립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 2022년 7월9일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3나노 파운드리 공정 기반의 초도 양산을 시작했다.
사진은 파운드리사업부의 정원철 상무(왼쪽부터), 구자흠 부사장, 강상범 상무가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사진 속 웨이퍼 한 장을 만드는 데 수 톤의 물이 필요하다. <삼성전자>

 

반도체가 물 많이 쓰는 거? 삼성전자의 '물 박사', "부모님도 모른다"

 

삼성전자는 세계적으로 중요한 인증들을 획득하면서 세밀한 물 관리의 수준을 객관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올해 3월에는 국내 최초로 국제수자원관리동맹(AWS)으로부터 최고 등급인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 국제수자원관리동맹은 UN 산하 국제기구인 유엔글로벌콤팩트(UNGC)와 CDP 등 국제 단체들이 설립한 물 관리 인증기관이다.

2021년에는 세계 반도체업계 최초로 카본트러스트(Carbon Trust)로부터 전 사업장의 ‘물, 탄소, 폐기물 저감’ 인증을 받기도 했다. 카본트러스트는 영국 정부가 기후변화 대응 등을 위해 설립한 친환경 인증기관이다.

구 박사는 “삼성전자에서 진행해 온 취수량 저감뿐 아니라 수질오염물질을 줄이고 이해관계자와 소통하는 등 물과 관련된 다방면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주요 인증까지 이어진 것으로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정부 기관, 주요 기업, 지방자치단체 등 이해관계자와 활발히 소통하면서 물 관리 측면에서 삼성전자가 글로벌 리더십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거대하고 복잡한 삼성전자의 초순수 제조 시설을 직접 보고 나니 어떻게 다뤄야할 지 막막한 기분부터 들었다.

기자는 이동 중 대화를 나누며 구 박사에게 “반도체 생산에 물이 많이 필요하다는 사실부터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어디서부터 기사를 풀어가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사내에서 '물 박사'로 통한다는 그의 대답은 간단하면서도 유쾌했다. 하지만 마음의 부담을 덜기에는 충분했다.

 

반도체에 물 많이 쓰는거요? 하하. 솔직히 저희 부모님도 잘 모르시더라고요.”

구 박사는 삼성전자가 물 공급을 안정적으로 받기 위해 생활하수까지 받아 쓰며 취수량을 줄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워터리스크, 물이 산업안보다] 폭우와 가뭄 등 극단적 기후현상은 세계 많은 지역에서 점차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9월 한반도에 몰아친 115년 이래 최악의 폭우로 포항제철소 고로는 사상 처음 가동을 완전히 중단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공장 운영에 필요한 수자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투자 계획을 고심하고 있다. 물이 너무 많아도, 부족해도 문제다.
인구 증가와 산업 활성화, 기후변화로 ‘워터리스크(water risk)’, 물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수자원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일이 산업 안보에 중요한 과제가 됐다. 워터리스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반도체, 철강, 화학, 발전 등 주요 산업은 물론 국가와 지역경제도 위험해진다.
비즈니스포스트는 국내외 주요 기업과 물 관리 선진국의 리스크 관리 및 해법을 CDP한국위원회를 맡고있는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함께 발굴해 보도한다. 

 

 

(다음편으로 이어짐.) 화성=이상호 기자(sangho@businesspost.co.kr)
<원문보러가기>

 

 

<[워터리스크, 물이 산업안보다] 시리즈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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